12세기 이래 중세 후기까지 프랑스는 서양 클래식 음악의 발전에 있어 가장 비중 있는 역할을 해왔다. 북프랑스에서는 ‘트루베르’, 남프랑스에서는 ‘트루바두르’로 불렸던 프랑스 중세 음유시인들은 음악 형식면에서는 교회음악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세속적인 내용을 담은 프랑스어 가사에 개성적인 리듬을 사용한 가곡을 창작했다. 궁정의 삶, 기사도 정신, 귀부인에 대한 연정 등이 이런 가곡 속에 들어 있다. 프랑스의 세속가곡을 ‘샹송 chanson’이라고 부른다. 샹송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프랑스 대중가요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 노래들은 현대적인 샹송을 지칭하는 ‘샹송 드 바리에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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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샹송’ - 무공의 노래
중세 음유시인들의 노래는 ‘샹송 드 제스트 chanson de geste’라고 한다. 중세 프랑스 서사시를 가리키는 말로 ‘무공(武功)의 노래’라는 뜻이며, ‘로망스 romance’라고도 불린다. 11세기 [롤랑의 노래]가 대표적인 작품인데, 거의 같은 운(韻)이 1만 행이 넘게 계속된다. 전체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길이(20-50행)의 부분들로 나뉘고, 각 부분이 하나의 연속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음유시인들이 그 하나하나에 짧고 일정한 선율을 붙여 연주하고 노래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샹송 드 제스트가 남성들의 노래라면 ‘샹송 드 트왈르 chanson de toile’는 여성들의 노래이다. 영어로는 ‘물레의 노래’ ,그러니까 ‘spinning song’이라고 부르는데, 집안에서 여자들이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옷감을 짜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의 괴롭힘이나 무관심 속에 불행하게 살아가는 아내, 사랑에 빠져 여위어가는 젊은 처녀 등이 주로 소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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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리트’와 프랑스 ‘멜로디’의 차이
19세기 독일 가곡에 해당하는 프랑스 가곡은 ‘샹송’ 대신 ‘멜로디 mélodie ’라고 부른다. 샹송은 오늘날 더 이상 ‘가곡’이 아닌 대중가요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가곡의 해석]이라는 책을 쓴 피에르 베르냐크는 독일 가곡의 직접적인 감정표현과 비교하면 프랑스 가곡의 표현방식은 훨씬 은근하다는 설명도 하였다. 각 단어가 가진 일반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음의 관능미, 언어적 울림의 아름다움, 텍스트의 철학적 깊이 등이 곡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 가곡은 전편에서 살펴본 독일 가곡과는 큰 차이가 있다. 독일어로 ‘리트 Lied’라고 부르는 가곡과 프랑스어 가곡을 칭하는 ‘멜로디 mélodie’는 상당히 다르다. 독일 리트가 19세기 전반에 이미 정점에 도달한 반면, 프랑스의 멜로디는 리트의 전통과는 무관하게 발전해갔다. 멜로디의 작곡가 다수가 낭만주의 시대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멜로디의 작곡 방식이나 분위기는 낭만주의 음악의 작풍(作風)과는 거리가 있다. ‘멜로디’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에 적용한 작곡가는 엑토르 베를리오즈로 알려져 있는데, 1841년에 그가 발표한 연가곡 [여름밤 Les nuits d'été]은 이 장르를 대표하는 예가 된다.